센터와 인연을 맺었던 난민 M 씨가 얼마 전 쉼터를 다시 찾았습니다. 양쪽 손목을 수술해서, 재활치료를 마칠 때까지 쉴 곳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쉼터에서 머물던 어느 날, M은 하트가 가득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자랑하더군요. “M 씨, 애인 생기신 거에요?”라고 물으니, 웃음을 띠면서, “애인은 아닌데 사랑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자랑하며 내용을 보여주는데, 상대가 미스터 김이더군요. “오, M 씨 벌써 한국인 친구를 사귄거에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M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동네 주민, 누구에게나 인사를 하며 다가서는 그에게 애인이 생겼다 해도 믿을 수 있지요. M은 미스터 김을 동네가 아닌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미스터 김이 M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더군요. 많은 이주민, 난민이 지하철 빈자리에 앉으면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자리를 떠나버리는 체험을 겪는데 말입니다. 노약자 석에 앉아 있던 미스터 김이 M에게 여기 같이 앉자 해서 난감했다더군요. 요즘 지하철에서 어르신들이 유튜브를 크게 틀어서, 흘러나오는 가짜 뉴스를 전파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합니다. 태극기를 휘두르며 국가가 더 중요하다며, 반 이민, 난민을 외치는 세대와 가까운 미스터 김은 어떻게 중동 출신, 난민을 이리 환대할 수 있었을까요? 미스터 김은 M에게 자신을 70년대 중동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로 소개했습니다. 당시 정부 주도 아래 석유파동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이집트로 파견된 건설 역군이었습니다. 중동뿐만 아니라 중남미로 농업이민을 보내고, 독일로 광부와 간호인력을 보내던 송출국, 대한민국의 역사를 겪은 미스터 김에게 우리나라에 온 중동의 M은 친근한 대상입니다. M에게서 미스터 김은 젊은 시절 뜨거운 태양아래 모래밭위에서 땀 흘리던 자신을 보았을 겁니다. M과 미스터 김이 다른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를 가진 것이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고향을 떠나 가족을 위해 땀을 흘리는 노동자란 공통점, 그것 하나로 서로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미스터 김과 M은 카카오톡으로 하트를 주고받는 특별한 사이가 된 것입니다. 수많은 젊은 미스터 김의 어깨를 빌어, 오늘 우리가 평안히 지낼 수 있습니다. 노동력을 송출하던 국가에서 수입하는 국가로 바뀐 일에 그들의 피와 땀이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지내는 외로움과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요? 오늘과 달리, 인간 존엄과 노동자 권리 등에 대해 미숙했던 시대라 그 수고와 고통이 더 컸을 겁니다. 그래도, 고향에 둔 가족을, 국가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틴 미스터 김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그들은 직접 겪은 이주민의 삶으로 우리를 찾은 이주민, 난민을 이해합니다. 크게 목소리 내어 주장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우리를 찾은 이웃을 환대합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편견과 차별이 사라 지지라 기대합니다. 같은 경험과 기억이 친밀함을 가져 온다지만, 미스터 김은 자신이 겪었던 나그네로서의 고통을 M도 겪기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미스터 김이 보내는 하트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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