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활동보고
1. 한 상에 둘러앉아
22년 전 어느 날, 성남의 한 양말 공장에서 일하던 8명의 중국동포가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사업장에서 부당한 처우와 상습적인 성추행 등에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이들의 안타까움을 지나칠 수 없어서 당시 탁아방으로 사용되던 장소를 내어드렸습니다. 이 날 맺은 이주노동자와 인연이 1997년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를 여는 일의 씨앗이 되었고, 다음 해에 남성 이주노동자 쉼터를 정식으로 개소하는 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주노동자와 한 상에 둘러앉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센터가 하는 일들이 늘어났습니다. 한국어와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 이들을 위해 교육을 준비했습니다. 임금체불이나 직장이동 등 문제를 가진 이들 대상으로 노동 상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만났습니다. 이를 통해, 의료 지원을 위한 사업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이주노동자 한 분 한 분의 어려움을 쫓다 보니, 이들을 옥죄이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더군요. 센터 혼자 풀 수 없는 문젯거리 앞에 보다 많은 이주노동자와 이주인권단체들과 함께 서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예수님이 사신 대로, 오늘도 이 땅의 나그네를 손님으로 맞아 밥을 나누고 떡을 떼고 있습니다.
센터 활동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해가고 있습니다. 요사이 새로운 손님이 저희를 찾고 있습니다. 이 땅을 찾은 이유는 달라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이주민과 그리 다르지 않은 난민입니다. 이들과 함께 서기 시작하기로한 2018년, 서울외국인선교센터 쉼터는 아래와 같이 운영되었습니다.
2. 모두의 쉼터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가 찾아 온지 30여년이 지났습니다. 이주민이 종사하는 단순노무 사업장이 서울로부터 수도권과 지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센터 부설 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 비율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2018년 1월부터 12월 까지, 총 1,744명(일평균 5명)이 쉼터를 이용했습니다. 전체 입소자 유형을 살펴보면 이주노동자가 625명(38%)이고, 그 뒤를 이어 난민 625명(36%)이 쉼터를 이용했습니다. 2018년, 제주 예멘 이슈로 존재가 드러난 난민은 그 이전에도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이슈 이전부터 쉼터에 난민 입소 요청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외국인 남성을 대상으로 쉼터를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청에 주로 난민인권단체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다 2018년 초부터 되려, 난민인권단체로부터 쉼터 입소 문의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늘어나는 요청 앞에 센터는 난민들과 함께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새로운 손님인 난민과의 생활은, 30여년전 센터와 이주민과의 첫만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처음 이 땅에서 이주노동자가 겪었던 언어와노동, 생활 및 의료에 대한 문제를 난민도 똑같이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8년도 통계에서 특이한 점은 전체 입소자 중 15.8%를 차지한 이주민입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노숙을 하던 외국인입니다. 주로 40-50대에 한국을 찾은 외국국적동포로 휴직 상태에 놓여,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고, 노숙을 택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주취나 폭력, 그리고 정신 질환 문제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들은 전문적인 노숙인 쉼터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터인데, 외국인이라 해당 기관을 이용하실 수 없었습니다. 길거리 외에는 머물 곳이 없던 사람들 가운데, 다시 서겠다고 약속한 이들과 센터가 함께 했습니다.
외국 노숙인과 이주민, 그리고 난민이 함께 살아가는 데에 친해질 만한 공통점을 찾기 힘듭니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 노동을 해야하는 동일한 현실이 이들을 묶어줍니다. 이들이 가진 공통 욕구인 취업에 가장 취약한 것이 난민입니다. 이주민에 비해 언어나 취업에 대한 뒷받침이 없기때문입니다. 처음 이주노동자와의 운동이 그러했듯, 난민 입소자 요구에 따라 자연스레 교육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3. 한국살이 교육
외국인 동포는 말할 것 없고, 이주노동자도 한국어 사용에 능숙합니다. 산업연수생 제도 이후
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본국에서 한국어 시험에 합격을 해야 우리나라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주민 다수가 노동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았기때문에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본국에서 정치나 종교 분쟁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인 난민에게 고향을 탈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저 우연히 발걸음이 한국을 닿아 난민 신청을 합니다. 신청을 하고 6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이 때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들은 노숙을 택하기도 합니다. 기다림 끝에 취업허가를 받으면 단순 노무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힘들게 기다려 얻은 기회이나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업체 입장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난민을 고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센터는 오랜만에 한국어 교실을 열었습니다. 2017년8월 25일 두 분의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2개 반으로 연 수업은, 현재 4개 반이 되어 1주일에 2회씩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로서 권리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기에 노동법 교육도 함께 열었습니다. 근로계약서 작성에서부터 여러 노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국살이를 위한 한국어와 노동법 교육을 마쳤더니 더 큰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숙의 흔적을 벗고 사회 재적응 준비를 마친 동포들도 같은 문제에 놓였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부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습니다. 직장을 이동하게 되었을 시 일주일에 한번씩 사업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습니다. 그러나 난민과 동포들은 직접 취업정보를 찾아야합니다. 한국어에 능숙하다고 하나 노령화된 동포들이 취업정보를 얻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난민 대다수는 해당 정보를 어디서 얻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들 아름아름 대림동 사설 직업소개소를 찾아갑니다. 이들에게 직업소개소 소개비는 부담이 되고, 일자리를 소개받아도 그 정보가 불분명하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설 직업소개소를 이용하는 사업장 다수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여건과 여력이 안되는 곳이 많습니다. 이에따라,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등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사업체가 다수입니다. 이에 센터는 봉사활동자들과 취원지원팀을 꾸려 일자리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난민과 동포 입소자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떠듬떠듬 한국어를 읽어내기 시작한 난민 입소자를 보면 20년 전, 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던 이주노동자들이 떠오릅니다. 네팔 출신 이주민으로, 현재는 자체적으로 모임을 조직하여 공동체 쉼터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센터와 일방적인 시혜가아닌 함께 서는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 이주민 공동체입니다. 이들과 함께 기획하고 꾸려가는 일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2019년에는 다음과 같은 의료지원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4. 사각지대 의료 지원
이주민이 삶이 나아졌다고 하나 우리의 이웃으로서는 아직 부족한 것들이 많습니다. 공장이
나 농장 등에서 주 6일제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많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병에 걸려서 병원을 가려 해도 사업장 사정 상 평일 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요일 날에나 시간이 나는 이주민을 위해 네팔 마가르 공동체와 함께 2019년 1월 20일 종합검진을 준비했습니다. 건강검진에 대한 이주민의 요구가 많아서 사전에 프리메드와 함께 의료진을 꾸리고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이주민 당사자 참여와 통역 등에 네팔 마가르 공동체가 힘써 주셨습니다. 총 54명의 네팔 이주민이 진료를 받았습니다. 내과, 외과, 피부과, 정형외과와 치과 과목으로 진료를 준비하였는데, 치과는 치료를 위한 장비를 준비하지 못하여 누락되었습니다. 이 날 이후, 장비를 지원할 수 있는 의료팀을 수소문하였습니다. 그러던 차, 경희대 치과대학 봉사팀을 만나 2019년 3월부터 6월 까지, 총 4차례의 치과진료를 시행하였습니다. 치과 진료 특성상 사전 예약한 환자만 치료를 볼 수 있어서 4번의 진료에 총 100여명의 이주민, 난민이 참여하였습니다. 의료 행사에서 꼭 뵙길 원한 이주민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센터가 만나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입니다. 저희 서울외국인선교센터가 위치한 곳은 종로구 창신동으로 봉제 산업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평화 시장을 앞에 두고 봉제 노동자였던 전태일과의 인연이 깊은 동네입니다. 요즘은 전태일이 염려하던 어린 객공 자리에 미등록 이주민이 대신해서 미싱을 돌리고 있습니다. 미등록이주민을 고용하는데는 봉제 산업이 침체되어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부터 이들과 만나며 의료 진료에 참여하시
라는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그러나, 회사 사정과 불안한 체류 조건때문에 행사에 참여하는 분들이 적었습니다. 아마 의류 지원보다 아래와 같은 문제에 대한 도움이 시급했기 때문 일겁니다.
5. 동등한 노동자 권리를 위한 상담및 지원
미등록이주민이 체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이들의 인권과 권리마저 불완전한 것은 아닙
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들이 권리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체류 조건때문에 회사와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등에 문제가 발생해도 부당함에 호소하지 못합니다. 근로기준법상, 체류 조건에 상관없이 노동자 권리는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미등록이주민과 함께 노동부를 찾아가는 일이 많습니다. 이들과 이렇게 하루 하루를 쌓아가며, 함께 상에 둘러앉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이전엔 센터의 노동 상담 대상이 주로 이주노동자 였는데, 요즘은 난민과 미등록이주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난민 입소자 같은 경우에는 취업 후에 근로계약서 작성에서부터 회사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2018년 초, 쉼터에 머물다가 새로 직장을 구하고 떠난 난민 중 몇몇이 임금 체불 문제로 다시 센터를 찾았습니다. 해당 문제를 겪으며, 당사자들이 권리는 찾는 사람에게만 보장되는 것임을 깨닫고 한국어와 더불어 노동관련 공부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존재하나, 소외 받는 노동자가 여전한 것은 전태일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 제일 낮은 곳에 떠돌이 모습을 한 예수님은 오늘도 이렇게 고난 당하고 계십니다.
6. 나그네 발을 닦을 소임
나그네로 우리를 찾은 하느님을 대접하는 일은 여러분으로부터 저희가 위임 받은 소임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 아래서, 여러분이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너른 품으로 이주민, 난민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월 30일, 여러분이 함께 예배 드리고 모아주신 새해맞이 헌금을 저희 센터가 전달 받았습니다. 당시 난민 입소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고민하고 있던
차, 그 귀한 손길이 그 일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손을 맞잡은 난민은 난민 신청을 했다가 서류상 문제로 외국인 보호소에 2년 동안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풀려나서 쉼터에 1년동안 머물다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한 해, 신청자 중 2% 만 받을 수 있다는 난민인정을 받은후에도 어느 곳에서 어느 하나도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그가 고시원을 구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가 가는 걸음 위에 여러분의 기도가 끊이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가 은혜를 입은 데에는 “하느님의 덕분이다” 라는 고백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를 찾은 나그네가 어떤 종교와 성별, 나이, 인종과 피부색을 가졌다 하더라도 모두가 하느님 모습을 띈 손님입니다. 이들을 환대하는 일은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가맡은 소임입니다. 주시는 기도와 관심 다시 새기며, 남은 한해와 다음 해에도 이주민, 난민과 함께 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